물망초와 캐비닛

＊ 해리포터 AU
＊ 슬리데린 순혈 마법사 말레우스 x 모종의 이유로 마법사이길 포기한 머글 출신 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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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GM 약속의 네버랜드 – 이자벨라의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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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복도에는 신기한 이야기가 있다. 너무나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어느 조건을 달성하면, 그 간절히 바라던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방이 존재하노라고.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이나 전설 따위를 믿는 편은 아니었다만, 왜인지 그날따라 발이 그 복도를 향해 이끌었다. 언제나 나를 이끌어주던 네가 더 이상 이곳에 없기 때문인가. 더는 움직이는 계단 따위를 볼 때마다 신기하다며 놀란 얼굴을 지어주는 이가 없었다. 그저 그런 생각으로, 다시 네가 알려준 길을 돌아갈지, 아니면 네가 없는 길에 적응을 해야 할지. 차기 왕이니 후계니 따위에 걸맞지 않게 고민이 담긴 길은 꽤나 경박한 걸음을 걸었던가. 마법처럼, 운명처럼. 언제나 네가 입에 달고 다니던 그 말처럼. 내 눈앞에는 신기한 문 하나가 나타났다.
 
  문손잡이는 꽤나 낡았지만 정밀한 세공이 돋보인다. 소재는... 나무? 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손잡이에 손을 얹어 가볍게 밀어내니 낡은 나무 문과 벽 사이의 경접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거대한 문 너머에는, 텅 빈 공간에 단 두 개의 거울만이 존재했다. 하나는 시계같이 화려한 장식이 수 놓인 거울이었고, 하나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매우 간단한 형태를 띠고 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사람을 빼고 모두가 내게 말해온 품위 있는 걸음을 흉내 내며. 장식하나 없이 거울 하나만이 위태로이 벽에 기대 있는 곳 앞에 섰다. 거울 위에는 오래 방치된 듯 먼지가 자욱했다. 잠시 손으로 털어내기를 망설이다, 숨을 불어 먼지를 털고 남은 조금을 옷 소맷자락으로 닦아내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푸른 초원, 저무는 노을, 흔들의자 위에 손을 움직여 뜨개질감을 뜨는 노인, 초원을 달리는 녹빛 눈이 인상적인 익숙한 외형의 소녀. 거울은 마법이 없는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평화롭고 또 자유로운, 거울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 폐쇄적인 건물이 아닌 자유가 있는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손을 뻗어 거울에 비치는 초원을 달리는 소녀의 잡히지 않는 머리카락이 이 손에 다시 잡히기를 소원했다. 부디 저 은빛의 머리카락을 다시 이 손에 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닿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 슬리데린의 이름에 걸맞게 그리 탐을 냈다. 그렇게 한참을 그 못생긴 거울 앞에 서 있다. 미동 하나 없이, 눈으로는 소녀의 움직임을 쫓으며.
 
  홀린 듯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가, 더는 네가 비치지 않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반가웠더래도 그녀가 모르는 사이 혼자 바라보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는다. 다른 것을 향한 저 녹색의 눈을 홀로 바라보는 것 따위는 처음이니까, 은백색의 머리칼이 이 손에 닿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꾹 깨문 입술에 통증이 멀어질 때쯤에야 멍한 정신으로 천천히 몸을 돌려 반대편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화려하게 치장된, 환상적인 거울. 그 거울에는 정말이지 환상이 비친다. 애석하게도 자연스레 나이가 들어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것은, 세계도 정의도 뿌리치고 함께하고 있는 모습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다. 손을 뻗어 거울을 만지니, 그 거울에 비치는 지금보다 나이 든 남자는 나를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금은 더 성숙한 미소를 지을 줄 알게 된 그녀를 품에 넣고선,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울은 내가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이상의 미래를 비추고 있었다.
 
  마음 한켠이 뒤틀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 환상에 대한 동경일까 부러움일까. 정말이지 이 방이 필요의 방이라면, 어째서 그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진정 내 소망을 안다면, 이따위 유리 조각이 아니라 그녀를 데려다주었어야지. 차마 그 거울에 비치는 꼴을 볼 수가 없어 눈을 감았다. 깊은숨을 들이쉬어 날뛰는 속을 눌러보지만 퍽이나 진정이 될 상황인가. 입술을 비집고 겨우 그 숨을 다 내쉬고서야 진정이 되었다. 거울 따위 다시 눈에 담지도 말자며, 허튼 생각 따위 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고 거울의 반대편에,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천천히 눈을 뜨니, 그곳에는 낯익은 낡은 캐비닛 하나가 있었다. 아직은 어리던 시절에, 질 나쁜 친구들이라며 쫓겨난 아이들을 따라갔던 곳에서 만났던 괴상한 캐비닛과 똑 닮은 캐비닛 하나가.
 
  가시골짜기와는 맞지 않는 평화로운 머글 인간들의 생활 소리를 들려주던 캐비닛.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은 그것은, 가시골짜기 저편에 던져둔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림과 호기심을 일깨워주었다. 지금의 나는 이 캐비닛이 무엇인지를 안다. 필요의 방, 네가 간절히 바라는 것, 신비한 캐비닛, —이것은 필히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 그것은 거울에 비친 네가 있는 세계이겠지.
 
  방금까지만 해도 기분 나쁘게 빠른 속도로 뛰던 심장이, 이제는 설레임에 더욱 빠른 박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방의 문을 열 때보다 빠르게 손잡이에 손이 닿았다. 잡아당겨, 그 행복한 소리가 가득한 캐비닛에 몸을 맡겼다. 좁은 캐비닛 안에 몸을 구기고 들어갔다. 먼지 쌓인 방의 것이 아닌, 풀 내음과 더불어 어색하기 그지없는 이 평화로운 소리가 나쁘지 않다. 정정하자면, 이것은 꽤나 기쁜 기분이다.
 
  문을 열 때와는 다르게,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천천히 캐비닛을 열었다. 발을 내디딘 곳은 필요의 방이 아니었다. 발에 치이는 이것은 살아있는 잔디다. 들판을 넘어가는 황금빛의 노을이 몸을 감싼다. 이 모든 것이 어색할 따름이다. 당황한 걸음으로 한 발짝, 한 발짝씩 그 캐비닛을 벗어나 초원의 중앙으로 다가섰다. 첫 번째 거울 속 모습 그대로다. 연기가 나는 굴뚝이 있는 집과 뛰노는 밝은 얼굴의 어린아이들, 바람에 흔들리는 데이지와 물망초, 그리고 그 사이 나와 같은 표정을 지은 네가 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너와 네 얼굴은 거울이라도 된 마냥 같은 색의 눈을 반짝이며, 같은 표정을 짓고 있겠지. 벅차오르는 마음에 고작 그 몇 걸음을 다가갈 수 없어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 뿐에 할 수 없다. 나를 바라보는 너도 마찬가지다. 입술을 달싹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듯이. 아마 듣지 않아도, 같은 말이겠지만.
 
  ” ... ...—츠노타로, 왜 이리 늦은 거야. 넥타이는 또 무슨 모양이야? 교수님께서 기숙사 점수를 깎으실지도 모르잖아. 얼른 와, 늦었어.”
 
   밝게 웃는 그 미소에 눈물이 걸쳐있어도, 그 목소리는 행복할 따름이구나. 다시 듣는 그 목소리에 이리도 밝게 웃는 나를 보면, 역시나 너를 향해 이끄는 이 마음은 불가항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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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랑모 님이 선물로 작성해주신 글입니다.